계절의 경계선
       
娑曦
계절의 경계선

아직은 목도리를 하기에는 애매한 계절 현삐 트위터 썰 백업


2022.08.09
겨울에 태어났는데도 추위를 많이 타는 여자가 있다. 손재주를 살려 겨울을 항상 춥게 나는 여자를 위한 목도리를 뜨며 선아현은 생각했다. 여원이는 겨울이랑은 별로 안 어울리는데, 하고.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색채를 가진 그녀에게서는 꽃 향기가 났다. 너무 고전적인지는 몰라도 김여원은 그런 향을 좋아했다. 자주 맡다보니 선아현도 그 향을 좋아하게 됐다.
향수를 쓰지 않는, 쉬는 날에는 버터와 설탕 냄새를 입고는 했는데, 오후의 햇빛 냄새와 더해지면 어쩜 이리 포근할 수 있는지 몰랐다. 이제는 쉬는 날에 그 포근함이 없으면 허전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김여원은 하늘색도 잘 어울렸다. 그래서 털실을 주문할 때 하늘색의 실을 지나치지 못했다.
한땀한땀 코를 뜨다보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집중해서 뜨개질을 하다보니 곧 다망한 토끼가 돌아올 시간이라 수줍음이 많은 꽃사슴은 재빨리 뜨개질거리를 숨기고 돌아왔다. 이 선물은 완성한 다음에 보여주고 싶으니까.
선아현의 핸드폰 메모장에는 목표가 하나 적혀있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목도리를 완성해보기. 나 몰래 그렇게 열심히 뜨던 게 목도리였구나? 꽃사슴은 주도면밀하게 뜨개질 현장은 감추는 주제에 핸드폰은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럴때만 눈치가 빠른 여자는 관대하게 넘어가주기로 마음 먹었다.
가을, 다시 갈색머리로 돌아온 여자는 벌써부터 날씨가 쌀쌀하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러면서 주말에는 단풍을 보러가자며 단풍 명소를 검색한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가자며 선아현은 웃었다. 이제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건망증이 도져서 겉옷을 두고가는 여자를 위해 선아현은 집업을 챙겼다. 아직은 목도리를 하기에는 이르니까, 겨울이 오면 전해줘야지. 춥다고 엄살이나 부리면서 그의 선물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누군가가 들었다면 화를 낼 게 분명한 생각을 하며 선아현은 목도리를 숨겨둔 서랍을 꼭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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