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토끼 전설?
       
娑曦
달 토끼 전설?

토끼 요괴와 선인 AU 현삐 트윗 썰 백업

2022.10.01
아니 글쎄, 옛날 옛적에 말이야. 이름 모를 병도 뚝딱 고친다는 명약을 파는 상점이 하나 있었대. 그런데 워낙 험한 산속 깊은 곳에 있어서 찾아가다가 목숨줄이 간당간당할 곳이라, 어지간히 간절하지 않은 이상 걸음 해볼 생각도 못 했지!

효성이 지극해 아픈 부모님을 위하여 그 상점을 찾아갔다는 이들이 있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명약의 실체는 보지도 못했기에 그냥 목숨 걸고 그 깊은 산을 올랐으니 하늘이 감복해서 구제해줬나, 생각했지. 상점과 명약 이야기는 그저 전설이구.

하지만 명약을 파는 그 상점은 진짜 있어. 어떻게 아냐고? 그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 상점의 주인이니까.

이름하여 달 토끼 상점.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달 토끼들이 대대로 운영한다는 상점의 이번 대 주인은 달 토끼가 아니었어. 흰 털이 아니라 갈색 털을 가진 토끼의 이름은 비비(斐泌).

비비와 그녀의 부모님은 모두 평범한 토끼 요괴이지만 어릴 적부터 토끼마을에서 떡을 제일 잘 만들기로 소문이 나서 달 토끼님들이 비비를 데려가 약 만드는 법, 달떡 만드는 법을 가르쳤고, 그 후로 달 토끼 중에서도 빼어난 실력을 자랑하여 상점을 물려받았어.

귀한 약초를 캐서 환단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잠들기 전에 준비한 떡 재료로 둥글둥글 떡을 굴리다 보면 손님들이 하나둘 도착하는데, 그럼 그때부터 전날 만들어둔 약을 팔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어.

워낙 산세가 험해서 인간 손님은 십 년에 한 번을 볼까 말까지만, 전국 팔도에 이어 하늘에까지 소문난 달 토끼 떡집 약의 효과에 오만 각색의 요괴와 선인 손님들이 줄은 있곤 했지.

그렇게 하루, 이틀... 백 년을 굳건하게 상점을 운영하는데, 그 선인이 나타났지. 약관의 나이를 지나 하늘의 관직을 얻자마자 그 어린 나이와 아름다운 자태에 하늘부터 땅까지 요란했어. 얼마나 요란했냐 하면 깊은 산속의 달 토끼 떡집 주인도 들을 만큼.

갈색 눈은 빛을 받으면 호박 석처럼 빛이 나고, 보드라운 갈색 머리카락은 윤기가 좔좔, 기골도 장대하여 품에 폭삭 안기고 싶은 남자 중의 남자라는데 땅에만 붙어사는 토끼 요괴가 만날 수 있을 리가 있나. 토끼 귀에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소문은 금세 잊었어.

그렇게 한참을 바쁘게 살아가는데, 조금 게으른 주인장이 미처 일어나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어. 똑똑, 소심한 두드림에도 예민한 토끼는 금세 잠에서 깼지.

-아이고, 일찍 오셨...

잠옷에다 장옷만 대충 걸치고 눈을 비비며 문을 열자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남자가 서 있었어. 얼마나 환상적이었냐면 그대로 냅다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지. 쾅! 하고.


그게 소문의 아름다운 선인, 아현과의 첫 만남이야.

배려심 넘치는 선인은 비비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오는 시간도 기다려줬어. 겨우 붉어진 뺨을 감추고 문을 열자마자 이른 아침인데도 완벽한 모습의 아현이 있어서 다시 얼굴이 붉어졌지.

-무, 뭘 사러 오셨나요! 만병을 고친다는 명약? 귀한 쌀과 팥으로 만든 달떡? 말만 해주세요!

평소보다 기합이 들어갔는데도 맹추처럼 말을 더듬었어. 시무룩한 마음에 귀가 팔랑거렸지.

-다, 달떡을 사러 왔어요...

부끄러운 듯 살짝 웃으면서 주문하는 아현에 비비는 오후에 팔 개수를 남겨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못 하고 소쿠리가 터져라 떡을 담았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나가는 옥색의 도포가 선인에게 정말 잘 어울렸어.

그날 이후로도 선인은 달 토끼 떡집에 자주 방문했어. 어떤 날은 약을 사 갔고 어떤 날은 떡을 사 갔어. 얼마 전부터 개시한 약차도 사 갔지. 찻잎뿐만 아니라 가게에 자리를 내어 차를 내려주기도 했는데 둘밖에 없는 이른 아침에는 차를 마시고 가기도 했어.

그 어느 날도 아현이 차를 마시고 가는 아침이었어. 여전히 주인장의 아침보다 빠르게 찾아와 문을 두드렸고, 다정하게도 급하게 채비하는 비비를 모르는 척해줬지.

-오늘은 결명자차는 어떠세요? 마침 겨울이니 시원하게 내갈게요.
-저는 좋아요...! 그리고 한동안 손님이 없을 거 같은데 호, 혹시 말 상대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가게를 자주 오가며 안면도 트고 저 잘생긴 선인과 통성명도 했지만, 가게가 워낙 바빠서 대화를 나눌 기회는 잘 없었지. 비비는 냉큼 기회를 물었어. 서역에서 들여왔다는 귀한 다과와 차 두 잔을 쟁반에 얹어 탁자로 내갔어. 가게 문을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고.

처음에는 차의 맛 칭찬으로 말문을 텄어. 딱 한 사람을 위해 매번 새롭게 구해오는 차였지만 비비는 차가 뭐 별것이 있냐고 배시시 웃었어. 오히려 맛있게 먹어주시니까 감사하다는 말도 했지.

-그, 문도 열지 않으신 새벽부터 찾아와서 죄송해요. 그때가 아니면 시간이 얼마 없어서...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것도 좋으니까 괜찮아요!

괜찮다는 대답에도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던 선인은 잘 숨겨서 들고 왔던 선물을 꺼내 내밀었어. 매일 이름 시간에 찾아와서 죄송해서 준비했다고. 비비의 눈 색처럼 푸르게 반짝이는 잎을 가진 아름다운 꽃이었어.

선계에서만 뿌리를 내려 이곳에서 오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꼭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얼굴을 붉히는 선인님의 모습에 토끼도 덩달아 얼굴을 붉혔어. 오가며 볼 때마다 비비가 생각났다는 말까지 화룡점정이었지. 그날은 평소 문 여는 시간을 한참 넘어서야 가게 문을 열었고 말이야.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빼둔 tmi들•••
1. 선인 아현이만큼 토끼요괴 비비에 대한 소문도 요란하다! 귀엽고 싹싹하다고...
2. 비비의 이름 한자는 아름다울 비에 샘물 흐르는 모양 비. 원래 비비 이름이랑은 관련없지만...
3. 선인도 토끼도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푹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