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안에 사람 있어요?
       
娑曦
거기, 안에 사람 있어요?

인권유린보관함(?)에 갇힌 현삐 트위터 썰 백업

2022.09.18
방송국 빈 대기실은 두 사람이 몰래 노닥거리기에 매우 좋은 장소였다. 스케줄이 끝난 후에 몰래 빠져나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만나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고 두근두근 밀회를 벌인지도 벌써 몇 번째인지.

오늘은 무슨 예능에서... 언제 사람이 앞을 지나갈지 모르니 불도 꺼둔 채로 붙어 앉아 작은 목소리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속삭였다. 무슨 스케줄이 있다고 연락을 주고받아서 다 알고 있다고는 해도 직접 듣는 일과는 또 다르니까.

한참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어지간하면 사람이 오지 않는다고 알려준 대기실에. 사람이 들어왔다. 얼마나 급했으면 문을 열어젖히기 전부터 뛰어오는 발소리가 요란해서 김여원은 선아현을 붙잡고 급하게 숨을 곳을 찾았다.

다행히 커다란 보관함이 있어서 김여원은 빠르게 선아현을 꾸겨넣었다. 한참을 긴 다리가 불편하게 접힌 와중에 김여원도 급하게 몸을 던져넣었다. 몸을 던지자마자 문이 열리고 불이 켜졌으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원래 쭉 비어있는 게 맞는 대기실이라 지나가던 사람이 들어와도 놀라운 건 아니었지만, 처음에야 긴장하지 한참을 써도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니 방심해있었다.

급한 통화를 하려고 들어온 관계자였는지 관련된 단어가 들려왔다. 스케줄이니 조정이니... 관심도 없었지만, 김여원은 애써 남의 통화를 엿듣는 것에 집중했다. 저기에라도 집중을 안 하면 자세를 자꾸 의식해야 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좁고 작은 보관함에, 커다란 사람 하나랑 커다랗진 않아도 작지도 않은 사람이 하나. 두 사람이나 숨겨주기에는 보관함이 상당히 벅차 보였다. 그러니까, 자세가.

큰 소리로 빽빽 질러대는 통화보다 조심해서 내쉬는 아현이의 숨소리가 더 클 리가 없는데도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빛이 들지 않는 보관함 안이 어두워서 빨개진 귀가 가려지니까 다행이었다.

통화 좀, 빨리 끝냈으면... 손에서 금세 땀이 배어 나왔다. 아현이가 다리라도 좀 편하게 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꼼질꼼질 움직인 게 화근이었다. 얇은 상의 너머로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고개가 절로 푹 수그러졌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필사적으로 이 민망한 상황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말았다. 무의식적으로 아현이를 힘껏 끌어안은 김여원은 그제야 아현이의 귀가 붉게 물든 것을 확인했다.

-부, 불편하지... 조금만 참아
-아니 나는 괜찮은데...

혹시라도 밖에 들릴까, 귀에 대고 최대한 소곤소곤 말하는데 아현이가 허리에 감고 있던 팔에 힘을 줬다. 호, 혹시 들릴지도 모르니까 그만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목소리가 흡사 우는 듯했지만, 상황 때문이겠거니, 하고 바보는 넘기고 말았다. 그때의,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빨개진 얼굴은 영원히 모르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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